건축은 시대의 요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위기,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공동체 해체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새로운 건축 설계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조형 중심 설계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 유연성, 공동체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모듈러 건축’, ‘재생건축’, ‘커뮤니티 중심 설계’와 같은 키워드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세 가지 핵심 트렌드를 중심으로, 현재 건축설계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듈러 건축: 빠르고 유연한 건축 방식의 진화
모듈러 건축(Modular Architecture)은 사전 제작된 모듈(유닛)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건축보다 훨씬 빠른 공정과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병상 수요가 폭증하면서 응급 모듈 병원이 급속도로 도입된 사례처럼, 빠른 대응이 필요한 도시 환경에서 매우 효과적입니다.
대표 사례로는 싱가포르의 ‘Clement Canopy’, 일본의 MUJI 하우스, 서울 동대문구의 공공 모듈러 주택 등이 있으며, 숙박, 오피스, 학교, 군 시설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듈러 건축은 단순한 조립식 컨테이너를 넘어, 디자인 다양성, 구조 안정성, 친환경 자재 사용까지 고려한 고급 설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팅 기술과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의 결합은 모듈러 설계를 더욱 정밀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주고 있으며, 소형 주택, 협소 부지, 반복적 프로그램에 적합한 대안으로 평가됩니다.
모듈러는 단순한 ‘건축 방식’이 아니라, 건축의 산업화·표준화·유연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2. 재생건축: 낡은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
재생건축(Re-Architecture 또는 Adaptive Reuse)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설계 전략입니다.
도시의 성장 한계와 자원 절감 필요성,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함께 사회적 의미도 함께 창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서울의 문화역 서울 284(옛 서울역사), 성수동의 카페 어니언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과거의 공장, 역사 건물, 철도역 등 노후 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하여 새로운 문화공간이나 상업공간으로 재해석한 사례입니다.
재생건축의 핵심은 단순한 리모델링을 넘어, 기억과 기능이 공존하는 장소성의 회복에 있습니다. 기존 구조물의 콘크리트, 벽돌, 목재 등 물성을 존중하며, 그 위에 새로운 재료나 조명을 더해 ‘시간의 레이어’를 구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또한 환경적 측면에서는 해체 비용 절감, 탄소 배출 감소, 건설 폐기물 최소화 등 지속가능한 건축의 대표적 실천 방법으로 평가됩니다.
과거에는 ‘낡은 건물은 헐고 새로 짓는다’는 사고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기억을 살리는 건축이 미래를 만드는 건축이라는 가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커뮤니티 중심 설계: 사람을 위한 공간, 다시 생각하다
현대 사회는 점점 개인화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지역 커뮤니티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은 이제 단순한 공간 제공을 넘어, 사람들이 연결되고 교류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중심 설계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간에서 활용됩니다:
공동주택의 커먼 라운지
도서관의 공유 주방
마을 커뮤니티센터, 사회적 기업 공간
공유 오피스 내의 교류 라운지
서울의 성북 공유공간 ‘마을예술창작소’, 일본 도쿄의 ‘다카하시 하우스’, 네덜란드의 ‘The Student Hotel’ 등은 건축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례입니다.
이러한 공간은 구조적으로는 열린 마당, 유리 벽면, 중앙 복도형 동선, 벤치 및 데크 구성 등을 통해 관계를 유도하고, 기능적으로는 공유 부엌, 워크숍룸, 라운지 등을 통해 ‘만남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중요한 점은 커뮤니티 설계가 **물리적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설계(Social Design)**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용자 참여, 유지·관리 방식까지 고려한 ‘포괄적 설계’가 되어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요약 및 방향성
건축설계는 이제 더 이상 형태와 외관 중심의 작업이 아닙니다. 모듈러 건축은 빠르고 유연한 실용성을, 재생건축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속가능성을, 커뮤니티 중심 설계는 사람과 사회를 잇는 공동체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방향은 빠르게 바뀌지만, 공간이 사람을 품고 사회를 바꾸는 힘은 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라면, 이 세 가지 트렌드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